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은 방학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밤낮없이 일하는 직장인은 휴가를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오랜 기간 원하는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거나 몇 년째 직장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많은 개인의 시간이 결코 즐겁지 않다.
팀 켈러가 쓴 ‘일과 영성’이란 책을 읽으면서 일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을 얻은 게 있다. “일은 하나님이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 주는 것이다.” 욕심에서 비롯된 지나친 Workaholic-안식을 배우지 못한채 일만 하는 것은 죄가 들어옴으로 파생된 일의 기형화이지만,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일은 인간에게만 주신 선물이라는 것이다. 일을 통해서 자아를 발견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게 됨으로써 참된 기쁨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 많이 벌어서 더이상 힘들게 일하지 않고 일평생 가고 싶은 나라들을 여행 다니며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고 편안하게 내 시간을 가지며 살면 행복할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가끔 거액의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볼 때 내게 저런 일이 생기면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를 혼자 상상을 하곤 한다. 그런데 그 로또 당첨자들의 ‘일을 그만둔’ 이후의 삶이 파멸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다. 확실히 사람은 일할 때 인간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살아가는 의미와 보람을 느끼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러면 노년의 삶은 어떤가? 몸이 약해지니 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열정도 떨어지기 마련이어서 열심히 일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은퇴를 하고 나면 사람이 팍 늙는다는 말처럼 생동감을 잃게 된다. 더구나 아름답고 멋지든 몸도 여기저기 이상이 생기고 아무리 화장을 하고 비싼 옷을 걸쳐서 폼이 나지 않아 속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년의 삶이 일의 성과를 내고 생산성을 올리는 시기는 아니지만, 이미 지나온 여정을 따라오고 있는 인생의 후배들에게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루터기가 되어줄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새로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부활절 사경회 강사로 오신 안효철 선교사님 내외와 대화를 하는 중에 그 사모님이 여러 가지 몸에 이상이 생기고, 언제 한쪽 눈이 실명될지 몰라 우울해할 때 ‘노년의 삶도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새로운 삶이니 그것을 경험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고 한 남편의 말이 크게 공감이 되어 노년의 삶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고백을 하셨다. 확실히 나이가 들면 눈에 드러나는 모든 것들이 함께 쇠약하고 빛을 잃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에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인생의 희로애락을 받아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누군가를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을 자존심 상한다 생각하지 말고, 몸의 오작동으로 생기는 잦은 실수들을 우울하게 여기지도 말고 도리어 주변에 감사할 기회로 삼고 자기 연약함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체득하는 과정으로 삼는다면 주님 앞에 설 최선의 준비를 하는 셈이 될 것이다. 해산의 고통을 겪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듯이, 제대로 된 영원한 생명에 진입하기 위해서 노년에 갖가지 연약함과 질병을 경험하는 것도 필요하다.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생각하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