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유다 왕 요아스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인격적인 모습과 겸손을 보았다. 북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이었던 아합의 딸인 아달랴가 남 유다 왕 여호람과 결혼을 한다. 이 아달랴가 나중에 남편과 아들이 죽자 모든 다윗의 자손을 다 죽이고 자기가 여왕의 자리에 오르는데, 그 가운데 유일하게 요아스라는 왕자가 고모부이면서 당시에 제사장이었던 여호야다에 의해서 목숨을 건진다. 7년간 성전에 숨어지내다가 그 여호야다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결국 아달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
그 요시야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무너진 성전도 다시 고치는 등 훌륭한 정치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고모부 여호야다가 죽자, 자기를 왕으로 세우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신하들의 말을 듣고서 하루아침에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을 섬기기 시작한다.
이때 하나님은 그를 돌이키게 하려고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지만,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심지어 하나님은 요아스를 왕으로 세워줬던 그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해서 말씀을 전하게 하신다. ‘설마 여호야다 아들의 말은 듣겠지’ 싶어서 보냈지만, 요아스는 그를 성전에서 죽이고 만다.
내가 집중한 것은 그 요아스의 배은망덕한 모습이 아니라 그를 돌이키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취하신 방식이었다. 온 우주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마음만 먹으면 요아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싹싹 빌며 잘못했다고 사정하도록 만들 수 있는 분인데도 왜 그렇게 쉽게 무시할 수 있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선지자들을 보내서 말만 하신 것일까?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다. 하나님은 있는 듯 없는 듯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말씀하신다. 즉 내가 무시하면 쉽게 거절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정체를 다 드러내시면 우리는 그 영광을 견디지 못해서 죽고 말 것이다. 우리가 자원해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즉 강요나 위협 때문에 하지 않도록 일하신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 그냥 두신 이유였고, 이 넓은 온 우주를 만드신 그 크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떠나 모질게 불순종하는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를 사람으로 보내어 마침내 그들의 손에 죽게 하신 이유였고, 지금도 짠하게 확실히 내 앞에 나타나셔서 속 시원하게 내가 궁금해하는 것에 말씀해 주시고,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단번에 해결해주시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분은 얼마나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시는 분이신지, 얼마나 겸손하신 분이신지 모른다. 그래서 조금만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면 그분이 하시는 말씀과 움직임을 알 수 있다.
매일 하나님이 보내신 내 주변의 사람들의 말들을 무시하지 말고 잘 경청하고 자원해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나 역시도 내가 가진 수단으로 다른 사람을 쉽게 조정해서 움직이려 들지 말고, 많이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대가 자원해서 움직일 때까지 끊임없이 설득해 나가고, 계속 기도하며 기다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의 방식으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