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은 그분을 믿지 않는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믿고 있는 분에게도 중요하다. 믿지 않는 분들이 아무 성경 말씀이나 듣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생긴다(롬 10:17) 했는데, 그리스도의 말씀이란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니까 성경은 예수에 대해서 증거하는 책인데(요 5:39), 세상 살아가는 데 도움 되는 자기개발서 내지 윤리강론집 정도로 활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해박했던 바울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 알기를 평생 힘쓴다고 한 것을 보면 예수 믿은 이후에 이 일은 계속 힘써야 할 일이다.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삼 년간 가르쳤던 것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16)고 사역 말년에 하셨던 질문에서 보듯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오신 당신 자신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마스터될 수 없는 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그의 제자들은 성전에서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가정에서 믿는 성도들에게도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를 믿은 후에 그분을 알아가는 일에 헌신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할 때 그분이 가져온 구원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죄에서 벗어나서 의롭고 거룩하게 되고(고전 1:30), 온전한 그리스도의 사람(골 1:28)과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된다(엡 4:13-14).
그런데 만일 교회가 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으면 구원받는 생명의 역사도, 삶이 변화되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중국이 공산화될 때 교회는 그곳에서 영원히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오히려 수많은 지하교회들이 생겨나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독교인을 둔 국가가 되었고, 이란도 1979년에 급진 이슬람정권이 들어선 후에 오히려 현재 중동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들이 기독교인으로 회심하는 나라가 되었다. 예수 믿으면 바로 죽는데도 불구하고 박해가 예수 그리스도만을 집중하도록 도와주었고, 그렇게 예수께만 집중하니까 그분이 이 땅에 가져온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지혜를 경험하면서 삶이 송두리째 변화되어 그 극한 박해 속에서 오히려 기독교는 부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이미 사도행전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모든 자유가 주어진 세속사회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보다 세상에서의 행복과 성공과 즐거움을 더 추구한다. 당장 눈앞에 있는 시험성적과 졸업 그리고 그 이후 취직, 안정된 연봉이 더 중요해서 교회에 와서도 계속 그와 관련된 얘기만 하고 그것을 놓고 열심히 기도한다. 이것이 필요 없다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주류가 되고 전부가 되기 때문이다.
이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박해이고, 또 하나는 전도이다. 전도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믿지 않는 분들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왜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냐고 묻는다. 그들과의 대화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살기 위해서 꾸준히 전도하러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