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오십 중반이 되어가니 인생의 마지막을 자주 떠올린다. 이제 남은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정말 잘 살다가 주님 앞에 서야 할 텐데 그 생각을 많이 한다. 은퇴하기 전에 했으면 하는 일보다 은퇴 후에 할 일을 더 많이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노인의 모습은 영국으로 친다면, Pub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거기에 오는 사람들과 우리가 살아가는 얘기들을 나누며 공감해주고, 그러다 특별히 마음에 있는 고민이나 아픔을 나눌 것 같으면 자연스레 그것의 궁극적인 답이 되시는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영국에서 목회를 잘 하고 있는 후배 목사가 있다. 그의 아버지도 역시 목회자셨는데, 그분은 90이 넘은 나이에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매일 버스터미널에 나가셔서 전도지를 나눠주며 복음을 전하셨다고 한다. 내가 꿈꾸는 나의 노년은 이런 전도자의 삶이다. 어쩌면 은퇴 후에도 하고 싶은 그 일을 보다 잘 하기 위해서 지금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전도하면, 흔히 무식하고 무례하고 일방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전도자의 모습은 너무나 멋지고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 모든 보드 멤버들이 바다에 빠져 죽을 위기까지 감수하시며 가셨고, 보통 유대인은 거의 가지 않는 사마리아 지역에 들어가셔서 다섯 번이나 이혼경력을 가진 한 여인을 우물가에서 만나서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라 할만한 니고데모가 몰래 밤에 찾아왔을 때 ‘너 이대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거듭나야 한다.’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고 결국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위험을 무릎 쓰고 그의 제자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남자와 여자, 노인과 어른, 지식인과 못 배운 자들을 만나셨고, 대화의 주제도 그만큼 다양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전도는 가장 해박한 지성인이 하는 전도였다. 한 분야에 탁월한 지식을 가진 지식이 아닌 우리의 삶에 맞닿아 있는 각양각색의 삶의 이슈들에 대해서 서스럼없이 답하셨고 때론 날카롭게 질문하셔서 그들의 말문을 막으셨다.
또한 그분은 당시의 일반 사람들도 멀리하고 인간 이하의 존재로 치부하던 나병환자, 이방인 여자, 어린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영접하고 기꺼이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더구나 자신을 죽일 목적으로 다가오는 사람들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응하셨다. 그분이 보여주신 전도는 결코 무식하고 무례하고 일방적이지 않았다.
평생에 걸쳐서 연구하고 묵상했던 그분의 말씀과 함께, 인생의 수많은 이슈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씨름하면서 깨닫게 된 삶의 지혜를 가지고, 주 앞에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비뚤어진 존재인지를 자각한 데서 나오는 긍휼의 마음을 갖고, 언제 죽어도 주의 품이라고 하는 그 빼앗기지 않는 평안에서 나오는 담대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잘 전하는 그런 노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