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족 대부분은 각 분야에서 인정을 받을 뿐 아니라 인격적, 신앙적으로도 훌륭한 분들이다. 큰 축복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나도 모르게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과 ‘나도 저렇게 살아야만 해’ 라는 부담감이 늘 무거운 짐이 되었다. 이로부터 자유해지기 위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며 나름대로 열심을 다했다. 하지만 자주 내가 이룬 것보다는 못하는 것에 집중하고 남들과 비교하며 자주 낙심하곤 했다. 특히 자신을 작품과 동일시하게 되는 예술분야에서 작품이 잘 안될 때면 나란 존재 자체마저 무가치하게 느껴지고 ‘나는 우리 가족의 오점’, ‘하나님의 실수로 태어난 사람’ 이라는 생각이 지배하게 됐다.
어느 수요예배 기도회 시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님 앞에 나와 무엇인가에 끌린 듯 어렸을 때부터 지은 죄를 회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터져 나온 방언과 함께 마음속에 주님의 강한 음성이 울렸다.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해서 지금 고백한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고 이미 용서했단다.’ 교회에서 수도 없이 듣던 복음의 메시지였지만 처음으로 예수님께서 내가 온전할 때가 아닌 가장 죄인이었을 때 오셨다는 사실이 감격이 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상대적으로 평가되는 세상의 성공이나 사람들의 인정으로 나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예수님의 나를 향한 절대적인 사랑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 후로, 하나님께서는 조금씩 뿌리 깊었던 내 잘못된 생각을 고치시고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우선, 내 삶의 기준과 중심이 내가 만들어놓은 성공의 형상이 아닌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으로 바뀌었고 그동안 내가 정한 나의 ‘어떠해야만 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자유해짐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또한, 세상의 인정을 기준 삼아 실패하면 낙심하고 성공하면 교만하기만 했던 이전과는 달리 하나님의 인정과 기쁨이 새로운 소망이 되면서 그런 주님을 경험하게 될 매일 매일을 기대하게 되었다. 특히 예전엔 그렇게 졸립기만 했던 예배시간이 주님을 만난다는 생각에 가장 신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다들 엄청난 부담감으로 준비하는 졸업 쇼도 모든 예배를 참석하면서 작업을 했기에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음에도 누구보다 평안한 마음으로 작업할 수 있었다. 이것은 이전의 내 삶과는 너무 다른 큰 변화였고 이는 하나님이 내 영에 충분한 만족감과 자신감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중간 중간 넘어진 적도 많았고 ‘평범한’ 하루가 소원이었을 만큼 유학생활이 쉽지 않았지만 돌아보니 욥의 고백처럼 내가 정금과 같이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지기 위한 단련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나를 만나주시려고 작정하고 먼 땅까지 불러주신 주님의 놀라운 계획 가운데 있었다.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앞으로의 길도 주님을 신뢰하며 미리 감사와 기대함으로 나아가고 싶다. 끝으로 이렇게 내 삶에 많은 간증들이 있는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준 우리 사랑하는 꿈이있는교회 식구들과 나의 영적 부모님인 목사님과 사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