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을 만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염려하고 걱정하기 마련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요즘 다들 이렇게 지내고 있지 않나 싶다. 보통 이런 일들이 생길 때 바로 기도로 나아가면 좋은데 그렇지 않고 염려에 계속 머무르고 더 진전되어서 결국에 두려움으로 나아가기 일쑤다. 염려는 우리로 하여금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대체로 부정적인 쪽으로 계속 상상하게 만들고 현재에서 저 멀리 미래로까지 나아가게 만든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란 게 있을까?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아무 사람도 만나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 그것이 가능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먹기 위해서 가게라도 가야 하지 않나? 그것도 두려워서 배달을 시켜? 만일 그 배달하는 운전기사가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감염되었으면 어떡하나? 염려하게 되면 끝이 없는 것이다.
성경에서 염려의 상황을 매니지하는 바른 태도는 언제나 기도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이렇게 기도하면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객관적인 눈을 갖게도 되지만 그 염려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과하게 질주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기도는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상황보다 하나님께 더 집중하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그 기도마저 염려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는 한숨에 머물 수 있다.
그래서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쓴 ‘응답받는 기도’에서 시편 1편을 지나서 2편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1편은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복 있는 자에 대한 고백이라면, 2편은 세상의 임금과 관원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해 오는 살벌한 분위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생명력 있는 지식을 가진 다음에야 태산처럼 큰 문제를 매일 직면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마음을 지키며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고자 할 때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상황이 그 발목을 묶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그 대안으로 하늘의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도록 하셨다.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일에 헌신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 교훈의 마무리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는 말로 하셨다. 왜 이렇게 말씀을 마무리하셨을까? 염려가 현재보다 내일을 향해 너무 과하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 그분도 아셨기 때문이다.
코로나에 대한 정보는 공식적인 채널만 보고 그 나머지 시간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일에 두고, 그래도 가시지 않는 염려와 두려움의 찌꺼기는 기도로 쓸어내는 삶을 이번에 매일 매 순간 연습해 보자. 수요예배 때 다들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