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수련회 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눴다. 이 수련회를 마치고 나서 내게 하나님께서 인상 깊게 주신 말씀이 있었다. 여러 주제 중에서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11절 말씀을 가지고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익숙한 말씀이 유달리 마음 깊숙이 다가와서 지금까지도 그 묵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 본문을 보면 영원 전 예수님과 이 땅에 사람 되어 오신 예수님, 그리고 승천하신 후의 모든 피조물의 주가 되신 예수님의 모습이 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2장 6절에는 영원 전 예수님을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영어로는 ‘very nature God’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nature인데, ‘원래 그것’이란 뜻이 들어있다. 그런데 그 단어가 좀 뒤에 다시 나온다. 7절에 원래 하나님이셨던 그분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종의 형체’라는 말이 영어로 ‘very nature of a servant’로 되어 있다. 원어로 봐도 동일한 단어이다. 그러니까 그분의 성육신은 완전한 종의 정체성을 취한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종으로 이 세상에서 사신 것은 단순히 행동이나 태도에 있어서 겸손한 정도가 아니라 뼛속 깊숙이 박힌 사상과 영이 되실 정도로 본래 종 됨 그 자체를 가지신 존재가 되셨다는 것이다.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도리어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려 함이라’는 그 말씀이 이해가 되었다. 이런 예수님을 온전히 본받고 싶어 한 사도 바울이 ‘내가 전파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신 것과 내가 너희의 종 된 것이라’고 한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묵상해 보면 영원 전부터 삼위 하나님은 서로 충분하고 완전하고 넘치는 사랑의 관계를 누리고 계셨고, 그 사랑을 자신의 밖으로 나누고 표현하고 싶은 열망에서 피조물을 창조하셨다. 결국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처음부터 사랑이었고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분은 피조물을 자기를 섬기도록 부려먹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왜냐하면 뭔가 부족해서 피조물의 도움을 받아야 할 분이 아니시기에-자신의 모든 영광을 나누어서 그들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분 안에 처음부터 종 된 nature가 있었는데 인간이 되시면서 그것이 실제 덩어리(nature)로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너희 중에서 으뜸이 되고 최고가 되려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는 그 말씀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런 분이시기에 하나님 나라에 가면 그 말씀이 뻥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얼마나 그렇게 살고 있나 날마다 나를 돌아본다. 종으로서의 그 삶이 나의 nature로 자리 잡게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