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회는 1985년 12월 7일에 문태주 목사님이 7명의 청년들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때로부터 대략 3년 정도 되어서 심관섭 목사님께서 두 번째 목회자로 사역을 시작하셨다. 19년간 사역을 하면서 뜨거운 교회로, 선교하는 교회로 정말 열심히 사역하셨는데 갑작스런 위암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2008년 6월에 내가 왔을 때에 주일예배를 두 곳에서 드리고 있었다. 지금 드리고 있는 시내와 윔블던 역 근처에서 각각 25명 정도 모이고 있었다. 수요예배는 남쪽의 또 다른 교회당을 빌려서 드렸었다. 숫자도 많지 않은데 격주로 성도를 보는 나도 아쉽고, 성도들도 합치기를 원해서 고민 끝에 매주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오는 시내 쪽으로 합쳤다. 그 과정에서 한 가정이 거리 때문에 가까운 교회로 옮겼고 남은 한 가정과 모든 성도들이 함께 해 주었다. 모이니까 60명 정도 되어서 분위기도 괜찮았고 마침 학기를 시작하면서 인터넷을 보고 새로운 청년들이 많이 교회를 찾아줬다. 예배 시작 전에 전도사님이 ‘목사님, 100명이 넘었어요!’라며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 때도 청년들이 성도의 주류를 이루었다. 반은 영어공부하는 어학연수생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마스터 코스를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이었다. 그러다가 비자법이 바뀌면서 어학연수생은 거의 없어졌고 그 자리를 B.A.과정이 대신해 주었다. 차츰 교회가 알려지면서 교민 자녀들과 직장 다니는 청년들도 함께 해 주었다.
초창기 가정이 많지 않을 때 한 가정이 미국에서 직장 때문에 런던으로 와서 처음 우리교회를 출석했는데 예배는 좋은데 가정이 없어서 고민이라고 했다. 그래서 섬기는 마음으로 남아달라고 했더니 정말 그 해에 많은 가정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셨다. 그리고 좀 더 있으니 자녀들을 낳거나 자녀를 둔 가정들이 등록을 해 주어서 부부셀에서 가족셀이 하나 더 생겼다. 그리고 그 각각의 셀 안에 유닛들이 분가해 가기 시작했고 자녀들을 많기 낳기 시작하면서 주일학교도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청년 중심의 교회에서 소외계층도 있다. 부모들이 30-40대이다 보니 중고등부가 많지 않아서 처음에는 우리 두 딸이 전부였고(진짜 외로웠음) 중간에 나이 있는 집사님 가정이 오셔서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그 수는 2-3명 선이었다. 이 소외계층(?)을 위해서 헌신한 고마운 선생님들이 계속 있어주었다. 또 다른 소외계층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50대 이상의 성도 분들이다. 청년들은 잘 못 느낄 수 있는데, 유치부 예배에 중고등학생이 앉아 있는 기분이라면 이해가 될까? 그래서 간간히 연세 있는 어른 분들이 오셨지만 결국 다른 교회로 가시곤 하셨다. 그렇지만 그래도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신 집사님들이 계셨고, 요즘에도 꾸준히 예배에 참석하시는 연세 있는 분들이 계셔서 개인적으로 참 감사하다. 우리 청년들이 이런 분들을 교회에서 보면 무조건 감사하다고 인사라도 깍듯이 해 주면 좋겠다. 오늘 Family Service를 드리면서 이런 성도들까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것을 경험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하며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