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두 아이가 유아세례를 받는다. 이 예식을 위해서 주중에 그 가정을 개별적으로 방문해서 준비모임을 가졌다. 식사를 하고 나서 티타임하면서 내가 만든 교재를 가지고 가르치기도 하고 나누기도 하는 모임을 가졌다. 첫 과는 부부에 대해서, 두 번째 과는 자녀 양육의 목표, 세 번째는 자녀 내려놓음에 대해서 나눈다.
이번에 이 공부를 하면서 부부 혹은 부모로서의 삶에 대해서 새롭게 다가온 부분이 있었다. 그 전에 부부관계에 대해서 어려워하는 성도와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마음을 터놓고 얘기가 되어서 돕는 마음으로 나의 지난 23년의 결혼생활을 통해서 배우고 깨닫게 된 것도 나누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 대화하면서 결혼의 의미, 부부가 되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새롭게 정리가 된 부분이 있었다.
결혼은 서로 다른 두 인격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신비로운 연합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라는 부부를 만드셨다고 했는데, 성부 성자 성령이 연합해서 셋이 아닌 하나를 이루신 하나님처럼 부부는 둘이 아닌 하나를 이룬 관계이다. 그래서 하나를 경험할 수 있게 디자인된 유일한 관계는 부부관계이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 다른 가정 배경에서 자라면서 형성된 생각과 습관의 차이 때문에 많은 조정도 요구되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죄가 가져온 인간성의 파괴로 파생되는 필연적인 갈등이 문제이다. 타락 후 아내는 남편을 원하게 되고(주장하려 하고) 남편은 힘으로 그 아내를 눌러버리려고 하는 경향이 생겼다. 결국 부부의 하나 됨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결혼 후에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 배우자의 심각하게 훼손된 인격의 영역을 발견하고 놀란다. 아무리 충고하고 본인도 열심히 고쳐보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되는 결함들을 지켜보면서 실망, 분노, 절망하기까지 한다. 과연 이런 사람하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한다. 이때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갈라서기로 결심하는 사람도 있고, 상대방에 대한 소망을 접고 그냥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이혼이 쉽지 않던 예전에 많았고 전자는 요즘에 많다.
이제 하나님의 시각에서 이 부분을 보도록 하자. 그분은 남편과 아내의 문제를 잘 아신다. 죄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그 부분을 보고 마음 아파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회복시켜 주기를 바라신다. 다음이 우리 아버지의 마음이다.
“이 내 아들, 이 내 딸을 저 구렁텅이에서 내가 예수를 통해 건져낼 자신이 있는데 누가 나를 도와서 이것을 잘 할 수 있을까? 옳지! 저기 저 애가 저 부분에서는 가장 잘 갖춰진 녀석이니까 서로 만나 사랑하게 해서 짝이 되게 하면 훌륭하게 일을 해 낼 수 있겠어. 다만 걱정되는 건 이런 내 속마음을 알지 못하고 그 심각한 그 결함을 발견했을 때 혹시나 갈라설 생각부터 하면 어떡하지? 도리어 ‘이제야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한 진짜 이유를 찾았어!’라고 제발 생각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