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든 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우면 아무리 좋은 일도 잘 감당해 낼 수 없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 같으면 상관없겠지만 대부분의 일은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하는 것들이다. 특히 하나님 나라 일은 더 더욱이나 그렇다. 우리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셔서 그분 성격상 공동체적이어서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그분의 일을 제대로 해 낼 수 없다.
런던오기 전에 한국에서 18년간 파트 전도사, 전임 전도사 그리고 강도사와 목사로서의 사역을 했고, 여기 와서 담임목사로 10년간을 사역중이다. 부교역자로 있을 때와 담임으로 사역할 때의 가장 큰 차이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일에서 관계로의 이동’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부교역자 때는 교회 무슨 행사나 행정이나 일을 열심히 하면 그것으로 ‘일 잘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거기에 남자 교역자로서 설교를 잘 준비해서 전하면 더할 나위 없이 괜찮은 사역자로 통한다. 그런데 담임목회자는 일보다 관계가 훨씬 더 중요하다. 물론 사역도 올바른 방향으로 잘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목회자 개인에게 사람을 품어주고 사랑하는 일이 많이 요구된다. 그것을 잘 못하면 사역하면서 굉장히 마음고생을 많이 하게 되고 그것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면 스스로 곪아가고 결국에는 사역도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사랑은 ‘사람들과 재미있게 잘 지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받는 실망과 상처를 잘 받아내는 능력’이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오래 참고 온유하며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어주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사랑은 성격적으로 유하고 착하고 친절한 것과는 다르다. 힘든 마음을 극복해내고 긍휼로 여전히 품어줄 정도로 내면이 강력해야만 할 수 있다. 그래서 대개 마음이 착하기는 한데 남의 말과 행동에 지나치게 신경을 많이 써서 쉽게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 속에서 화가 가득차고 그것을 풀지 못해서 꾹꾹 누르게 되면 무기력증에 빠져들 수 있다. 그래서 우울증은 착한 사람들이 너무 약해서 걸리는 마음의 병이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어서 그분과 관계를 맺고 동행할 때에야 비로소 소유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멀어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살든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껴안고 스스로 죽어가든가 그 둘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믿음의 성숙은 사랑으로 체크되고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 나라 일을 해 낼 수 있다.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게 될 때 그분으로부터 진짜 사랑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상처 주는 그분의 거친(?) 양들을 품어가면서 돌보는 것이다. 주님의 일은 무슨 행사를 기획해서 잘 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믿어 강건케 되어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3-14).